2002년 월드컵 돌풍의 핵- 세네갈

Posted by hisapa
2013. 3. 15. 16:38 카테고리 없음

2002년 월드컵 돌풍의 핵- 세네갈

 

 

 

 

  2002년 한국과 함께 돌풍을 일으킨 나라 바로 세네갈입니다. 세네갈은 서부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라로 17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쟁탈에 중심이 된 나라였습니다. 결국 프랑스가 쟁탈하였고 1946년 프랑스연합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10여년후 프랑스 자치공화국이 되었고 2년후 말리와 함께 독립하게 됩니다. 월로프족, 풀라르족, 세레르족으로 구성되있면, 식민통치 영향으로 프랑스어를 구사합니다. 이슬람교와 소수의 그리스도교로 이뤄진 나라로 아프리카내의 문화수준이 상당히 높은 나라입니다.

 

  레오폴드 셍고르, 부알라 신부등의 우수한 시인과 작가 ,유명한 영화감독들이 세네갈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행정구역은 11개구로 나눠서 나라의 행정을 처리한다고 합니다.

 

 

2002 늦게 핀 녹색 거인 - 전북 최진철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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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 6. 07:00 카테고리 없음

2002 늦게 핀 녹색 거인 - 전북 최진철 선수

 

 

 

 

   2012년 최고의 베스트 셀러 '아파야 청춘이다'를 보셨나요? 거기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꽃은 자기가 피우는 시기가 다 다르다. 빨리 피는 꽃도 있지만 늦게 피는 꽃도 있습니다. 후자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선수가 최진철 선수 입니다.

 

  최진철 선수 역시 히딩크사단의 2002년 주목받는 신인이였죠. 사실 신인이라기엔 나이가 많았습니다. 32살이라는 나이로 철벽수비의 한축을 담당했습니다.아시아선수답지 않은 큰신장과 철저한 대인마크능력을 보이며 2002년 화려하게 꽃피우죠. 많은 나이와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고도 붕대를 감고 투혼을 불싸르던 그의 모습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 그이상이였습니다.

 

  사실 최진철 선수가 공격수 출신이였단 사실을 많은 분들은 모를겁니다. 고등학교까지 줄곧 제주에서 활약했던 그는 큰신장과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공격수로 활약했습니다. 제주에서 나름 잘나가는 공격수였지만 대표선수로는 발탁되지 못했는데 대학교를 서울로 진학하며 그의 생각은 깨지고 맙니다. 서울에서의 축구생활은 제주의 그것과는 달랐기때문인데요. 늘 공격수만 하던 선수였던 최진철 선수는 대학시절 은사의 권유?로 수비수로 전향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대학교 졸업이 가까워오자 수비수로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최진철선수는 대학졸업과 함께 프로에 데뷔하지 않고 바로 상무에서 실력을 키워나갑니다. 이후 전북 현대로 입단하며 은퇴할때까지 전북의 방패로 , 전북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합니다.

 

  1998-1999시즌에 주전공격수의 이적으로 공격수부재에 시달릴때 최진철선수가 공격수의 역활을 해냅니다. 두시즌동안 8골, 9골, 총 17골이라는 공격수로의 훌륭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공격수로의 전향을 권유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피로 골절이 왔던 터라 체력적 부담이 덜한 수비수로 다시 돌아오게 되죠.

 

  국가대표로 2004년 은퇴를 선언하지만 본프레레 당시 국가대표 감독의 권유로 다시한번 2006년 붉은 유니폼을 입고 투혼을 발휘했던 그, 그리고 소속팀에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의 우승으로 마지막 선수생활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2007년 늦게 핀 녹색거인은 은퇴를 합니다. 현재는 강원 fc의 코치로 활약하고 있는 최진철 선수. 그의 팀을 응원해 봅니다.

 

 

2002 월드컵 마스크의 추억 - 김태영 선수

Posted by hisapa
2013. 2. 5. 07:00 카테고리 없음

2002 월드컵 마스크의 추억 - 김태영 선수

 

 

 

 

    2002월드컵의 숨은 영웅중 한명인 김태영 선수입니다. 문득 한국 축구 선수들을 포스팅하다보니 2002년 대표팀의 영웅들을 빼놓을 수가 없더라구요. 가끔 뉴스의 자료화면이나 tv에서 우연치않게 볼때마다 소름이 돋습니다.다시 한번 더 일어날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였으니까요.

 

  월드컵이전에 김태영선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2002 히딩크 매직에 걸린 한 선수로만 알고 있었죠. 하지만 1992년부터 2005년까지 쭉~ 대표팀에서 활약한 배테랑이더라구요.

tv화면이지만 그가 웃으면서 플레이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이유는 절박함이였다고 하고 싶은데요. 사실 김태영선수는 축구선수로써 뛰어난 체격도, 좋은 기술도 없었습니다. 다만 빠른 발로 그리고 자기 관리와 단점들을 메울만한 절박함으로 단점들을 이겨낸 선수이죠. 빠르지만 투박하고 거친 플레이와 인디언 부족같은 외모로 아파치란 별명의 김태영선수,  그런 그의 절박함이 2002년 내놓라는 세계스타들을 잠재우는 수비수로 거듭나게 합니다.

 

  당시 최고의 스트라이커중 한명이였던 비에리 선수를 마크하다 코뼈가 부러지며 마스크를 착용하며 남은 일정을 소화한 대단한 선수죠. 말이 코뼈가 부러진것이지 몸에 금이 나거나 뼈가 부러진 경험이 있으신분들은 그게 얼마나 대단한건지 아실겁니다. 그런 고통을 마스크하나로 버텨내며 뛰어내고 이겨냈다는 것이 선수로써 그의 프로정신이 어떤것인지 잘 표현해주는 것 같습니다.

 

  몇해전에는 홍명보사단의 수석코치로 활동하던 김태영선수, 현재는 울산 현대 호랑이의 코치로 활동한다고 합니다. 그라운드를 누비며 공격수를 잠재우던 그는 볼 수 없지만 선수를 길러내고 지도할 그의 활약을 다시 한번 기대해봅니다.

 

 

 

달리고 싶은 풍운아 혹은 실력자 - 이천수의 축구이야기

Posted by hisapa
2013. 1. 28. 07:30 카테고리 없음

달리고 싶은 풍운아 혹은 실력자 - 이천수의 축구이야기

 

 

 

 

  한국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뉴스를 장식하는 축구 선수 이천수 선수입니다. 뉴스에서 언급되는 그의 이름만큼이나 실력또한 엄청난데요. 박지성 선수가 발간한 책에도 언급되 있습니다. 박지성 선수가 축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굉장히 잘하는 선수가 있다고 말했다는데, 그게 바로 이천수선수입니다. 2002 월드컵 독일과의 경기에서 비록 막히긴 했으나 결정적인 슈팅을 찬것도, 2006월드컵에서 대표팀을 이끈것도 이천수 선수였습니다.

 

  빠른발과 정확한 패스, 뛰어난 크로스, 개인 돌파능력에 프리킥까지 헤딩빼고는 뭐하나 빠지는게 없는 선수입니다. 당돌하고 거침없는 그의 성격때문인지 뉴스에 자주 이름이 올라왔었죠. 2002월드컵이후 연예계 뉴스에도 열애설과 연예활동으로 이름을 자주 올리더니 해외진출이후 한국으로 복귀와 동시에 구단과의 마찰로 인한 뉴스가 자주나오게 됩니다.

 

  국내무대에서는 전남드래곤스와의 다툼과 팀의 무단이탈, 독자적인 해외진출등으로 인해 현재는 무적 상태의 이천수 선수입니다. 현재 전남과의 화해로 선수복귀의 소식이 소근소근 들리고 있습니다. 언행과 축구외적인 부분을 제외한 그의 축구 실력에 대해서는 그누구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무적의 상태일때 조기축구로 몸을 만들고 있단 소식이 상당히 안타깝게 들리던 그였습니다.

 

  현재는 전남팀의 홈경기때마다 구장을 찾아 팬들에게 사과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의 그런 진심이 전남팀을 움직이고 있고, 그를 주위에서 지켜본 관계자들이 그의 능력을 썩히고 있는것을 아까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축구외적인 부분의 문제로 축구장을 떠나 있는 그이지만, 하루 빨리 축구장으로 돌아와 지난 잘못을 늬우치고 축구 성적으로 보답해줬으면 합니다.

 

 

 

2002 월드컵의 영웅 스나이퍼 - 설바우두 설기현 선수

Posted by hisapa
2013. 1. 27. 19:49 카테고리 없음

2002 월드컵의 영웅 스나이퍼 - 설바우두 설기현 선수

 

 

 

  2002 월드컵의 영웅 설기현 선수입니다. 2002 월드컵이 벌써 11년 전의 이야기가 되버렸네요. 참 시간 빠릅니다. 각설하고 설기현선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2002 월드컵 당시 지독하게도 욕먹던 선수가 바로 설기현 선수였죠. 이탈리아전 바로 전까지는 말이죠.

 

  아직도 기억합니다. 한국이 4강에 올랐던때 눈에 보이지만 그 당시로도 믿을 수 없던 4강의 기적을 말이죠. 2002월드컵 개최전 친선경기는 결과가 좋지 못했는데요. 대표팀 명단에는 당시 설기현이라는 젊은 선수가 있었습니다. 체격과 파워 크로스를 갖췄지만 잦은 실책과 역주행으로 팬들의 원성은 높아져 갔죠.

 

  본선무대에서는 점점 심해졌습니다. 중계를 보던 저도 쟤는 뭔데 계속 나오는 거냐며 투정을 부렸으니까요. 그치만 그는 이탈리아와의 승부에서 종료가 10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동점골을 뽑아내며 히딩크 감독의 믿음에 보답합니다. 그때 누워서 펑펑 울던 그의 모습에 크게 감동 받았었죠.

 

 

  저는 설기현 선수가 2002월드컵 이후에 해외진출한걸로 알았습니다만 프로 첫데뷔가 벨기에였더라구요. 은근 엘리트 코스였습니다. 벨기에의 로열 앤트워프팀에서의 첫시즌에 12골이라는 성공적인 활약으로 벨기에 최고 명문팀 안더레흐트로 이적하게 됩니다. 당시 중계는 없었지만 뉴스에서 그의 골소식이 심심치 않게 나왔었죠. 4년의 활약으로 영국의 울버햄튼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그후 레딩으로 이적하는데 레딩에서 설기현선수의 임팩트는 한국 선수 역대급 활약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네요. 당시 EPL의 활약을 기준으로 선정하는 best 11에 설기현선수가 선정될 정도였으니까요. 저때의 설기현 선수는 스나이퍼 였습니다. 필요할때 골을 넣거나 어시스트가 많았으니까요. 시즌 후반 페이스가 떨어지며 풀럼으로 이적하고 중간에 사우디 리그를 거쳐 현재는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선수로 활약중인 설기현 선수입니다. 어느덧 선수로써 황혼기에 접어든 그를 가슴깊이 응원해 봅니다.